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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의 AI와 아트테크] 백남준과 사유하는 힘

AF(에엪) 2025. 7.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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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의 AI와 아트테크] 백남준과 사유하는 힘

AI 시대, 예술의 본질과 인간 사유의 중요성을 묻다
 
글쓴이  : 이상미 (백남준포럼 이사장, 이상아트 대표이사)

 

백남준 ‘TV 부처’(1974), 석불좌상과 TV 모니터, 폐쇄회로카메라.

 

AI가 예술 창작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우리는 기술혁신이 아닌 철학적 질문과 정책적 대응의 교차로에 서 있다.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이제 학술 담론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교육 정책의 문제로 전이되고 있다.

 

2022년 제이슨 앨런은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해 만든 ‘우주 오페라 극장’로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3년 2월, 미국 저작권청(USCO)은 인간 저작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거부했다. 기술 기반 예술이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은, 기술의 진보와 법적 기준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철학적으로, AI 예술은 여전히 인간 사유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백남준은 이미 1980년대에 기술을 도구가 아닌 철학적 개입의 매개로 다뤘다. ‘TV 부처’(1974)는 불상과 CCTV를 병치해 기술과 영성의 대화를 시도했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은 전 세계를 위성으로 연결해 냉전 이념을 무력화했다. 반면 오늘날 AI는 맥락 없이 이미지를 생성할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해 세계와 사유를 연결하지는 못한다.

 

객관적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옥스퍼드 대학의 공동연구는 AI가 보조한 작품은 창의적 독창성 측면에서 평균 25%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AI가 기계학습을 통해 기존의 스타일을 반복 재현하는 데 강점을 가지나, 의미 생성과 새로운 시선의 제시에 있어 한계가 있음을 입증한다.

 

이 논의는 단순한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2018년, 프랑스의 아트 콜렉티브 오비어스(Obvious)가 AI가 생성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를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에 판매하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이 작품의 알고리즘은 다른 작가가 개발한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차용한 것이었고, 이에 따른 저작권 귀속 문제가 논쟁이 됐다. 법과 제도가 AI 예술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문화예술계의 응답도 다양하다. 2024년 퐁피두센터는 ‘아포페니아, 중단들’(Apophenia, Interruptions) 전시를 통해 AI의 오류와 비논리성을 창작 자원으로 활용했다. 홀리 헤른던과 매트 드라이허스트의 ‘I’M HERE’(2023)는 AI의 실패를 감성적 기호로 전환했다. 에릭 보들레르는 네 대의 AI가 만든 무작위 서사로부터 ‘이야기 없음의 이야기들’ 을 구성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도 2024년 ‘인공적인 세계란 무엇인가’를 통해 인간과 기술의 공존 가능성을 실험했다.

 

교육정책도 철학적 관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스터디즈(CCS)는 AI 사용을 아이디어 구상에만 제한하고, 모든 시각 자료의 출처 표기를 의무화하는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캐나다 요크대는 디지털 아트 인문융합 프로그램에서 철학, 스토리텔링, 기술을 통합하며 기술을 통한 인간 이해를 교육의 핵심으로 삼는다.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비판적 기술 문해력의 조기 함양이 중요하다.

 

정책은 예술가에게 질문하고 실패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AI 시대에 실험은 곧 창작이다. 따라서 공공영역에서 아트앤테크랩(Art & Tech Lab) 등 실험 중심 창작 공간을 조성하고, 저작권 체계 또한 인간과 AI의 협업 창작을 반영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중등 교육과정에는 인공지능과 미학 같은 교과를 정규 편성해, 예술이 기술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재구성의 주체로 서도록 해야 한다.

 

백남준은 말했다.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하는 존재다.” 기술은 정교해지지만, 질문을 던지는 힘은 인간의 몫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생성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예술은 생산이 아니라 사유이며, 그 시작과 끝은 인간이다.


 
AF 에엪 독자소통부 press@artfr.co.kr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이상미의 AI와 아트테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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