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데이 - 문화의 창] 전쟁의 아픔 일깨운 ‘게르니카’(피카소·1937년 作)
[이투데이 - 문화의 창] 전쟁의 아픔 일깨운 ‘게르니카’(피카소·1937년 作)
글쓴이 : 이상미 이상아트(주) 대표이사,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으로)을 사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오래된 작품이나 전시를 보는 이유는 어떤 즐거움이나 감동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같은 미디어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칼럼은 이슈가 되는 예술 작품을 통해 사회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전달해 주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쉽고 재밌지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최근 극장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초반에 피카소의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이라는 회화작품이 등장한다. 1937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피카소의 네 번째 연인이었던 마리테레즈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 제작연도는 피카소의 본국인 스페인 현대사의 가슴 아픈 기록인 게르니카 학살이 자행된 비극적인 해이기도 하다.
1936년 2월 사회당과 좌익 공화파, 공산당으로 구성된 인민전선의 집권에 반대해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 국민당은 반란을 일으켰다.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프랑코 장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공화국 정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데 그쳤고 영국과 프랑스 등은 불간섭 정책을 취했다. 바스크 정부는 단독적인 군 통제권을 갖고 있었고 국민당과 공화당 간 다툼은 가장 큰 도시인 빌바오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공화국 정부의 전복을 꾀한 프 랑코 군대는 스페인 북부 공화주의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주요 근거지인 게르니카 일대를 폭격하기로 결정한다.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을 원하는 바스크 민족에게 게르니카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1937년 4월 26일 오후 4시30분, 게르니카에 폭탄이 재앙처럼 내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독일 공군 콘도르 군단과 이탈리아 공군의 폭격기 55대는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대령의 지휘 아래 게르니카에 2시간 넘게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250㎏ 고폭탄과 50㎏급 폭탄, 1㎏ 소이탄까지 무려 24톤을 퍼부었다.
평화롭던 게르니카는 죽음의 도시로 바뀌었다. 인구 7000여 명의 마을은 불타고 무너졌다. 마침 휴일이어서 시내 중심가에 나온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폭격으로 속절없이 숨을 거뒀다. 사망자만 1600여 명(당시 바스크 정부 추산)이고 900여 명이 부상했다. 특히 성인 남성들이 전선에 나가 있어 피해자는 주로 민간인 여성과 노약자들이었다. 전체 건물의 4분의 3 정도가 파괴됐다. 주요 무기고였던 운세타 사와 타예레스 데 게르니카, 공화당의 주 청사였던 카사 데 준타스 등도 파괴됐다.
정규군이 민간인을 직접적 공격 대상으로 삼아 무차별 폭격을 한 것이다. 프랑코의 요청으로 폭격을 가한 나치 공군은 게르니카를 전격전의 첫 전술적 시험무대로 삼아 독일 공군 최첨단 무기의 성능을 실험했다. 게르니카 폭격은 군사 전술적인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공화파 지역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민중의 저항 의지를 꺾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편 그 당시 피카소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게르니카(Guernica, 1937)’ 회화작품을 통해서 스페인 국민파와 독일을 비난한다.
독일이 스페인의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를 폭격해 약 1600명의 주민을 살상한 참상을 표현한 피카소의 유명 작품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과 게르니카 마을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작품의 원작은 1992년부터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에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어야 할 장소는 다름 아닌 게르니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게르니카의 중심부인 푸에로 광장에서 외곽 방향에 있는 한 주택가의 담벼락에 원화를 그대로 복제한 타일벽화로 전시돼 있다. 실제 작품보다 크기가 작지만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전해준다.
1997년 전쟁 60년을 맞아 당시 독일 대통령 로만 헤어초크는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이 한 잘못을 사죄하는 편지를 게르니카 생존자들에게 보냈다. 이듬해인 1998년 독일 의회는 독일 군사기지에서 콘도르 군단 소속 군인들의 이름을 제거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해에 게르니카 박물관이 개관했고 2002년에 이르러 스페인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게르니카 평화박물관으로 변모했다. 게르니카 평화박물관은 참사 당시 게르니카 상공을 날던 독일 전투기를 모형으로 재현하고 마을을 잿더미로 만든 포탄들을 그대로 모아 전시하고 있다.
86년 전 공습으로 폐허가 됐던 게르니카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게르니카 곳곳의 건축물들은 아픈 전쟁사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일깨워주고 있다.
■약력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 예술학 박사 수료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 △한국콘텐츠진흥원 글로벌콘텐츠 비즈니스 자문단 △한국아트테크협회 대표 △저서 'AI와 아트테크'(박영사)
이상미 유럽문화예술 콘텐츠연구소장
AF 에엪 독자소통부 press@artfr.co.kr
※ 본 칼럼은 이투데이에 2023년 9월 8일 게재된 글입니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228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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