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의 AI아트] NFT, 기술보다 제도가 먼저다
미국발 '블록체인 빅뱅'...규제 변화가 던지는 경고
한국 NFT 시장, 제도적 현실감 확보 필요
글쓴이 : 이상미 (백남준포럼 이사장, 이상아트 대표이사)
지난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산업에 관한 3대 법안을 통과시켰다. ‘GENIUS Act’, ‘CLARITY 개정안’, ‘Anti-CBDC 감시국가 법안’이 그것이다. 해당 법안들은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 정부 발행 디지털 화폐(CBDC)에 대한 견제,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 등 미국 내 규제 틀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금융 정책의 변화를 넘어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특히 NFT를 활용한 디지털 예술 시장이 제도화 시기의 변곡점을 맞았다는 사실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NFT 시장은 기술적 가능성보다 사회적 기대감에 의해 먼저 성장해왔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소유권 인증과 거래 기록 투명성은 예술 작품의 진위 검증과 재판매 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기술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기대와 신뢰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며, 검증 없는 낙관은 종종 위험한 관행으로 이어진다. NFT가 현실의 예술 생태계와 기술적·제도적 호환성을 충분히 갖추었는지 따져보는 일이 앞서야 한다.
현실을 살펴보면, 미국과 유럽 주요국 역시 아직 NFT 거래에 대한 법적 기반을 완전히 마련하지 못했다. NFT가 예술작품의 진정성과 저작권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자동 보장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실상은 대부분 플랫폼별 계약 조건에 따라 저작권 보장 수준이 매우 다르고, 추급권(royalty) 적용 여부 또한 천차만별이다. NFT를 둘러싼 법제는 아직 실험 단계이며, 프로젝트별로 해석과 적용이 유보된 항목이 많다. 국내에서도 이를 법제화된 권리 보장으로 착각하고 제도 뒷받침 없이 시장만 확대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문제는 한국의 제도적 대응이 오히려 형식적 편의성과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화 결제 환경과 한글 UI를 도입한 NFT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과도한 기대다. 물론 기술적 접근성을 높이는 의미는 있으나, 글로벌 NFT 시장의 유동성과 연결성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폐쇄된 운용 구조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실효성보다 심리적 만족감에 치중된 접근은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확보에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규제의 과속화 역시 문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금세탁방지(AML), 개인 정보보호, 실명 확인(KYC) 같은 요소를 권고 규범으로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반면, 한국은 이를 곧바로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으며, 이러한 규범화는 시장 형성 초기의 실험성과 접근성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NFT와 예술 창작을 결합한 민감한 영역에서는 창작의 자유와 기술 실험의 유연성을 보호할 제도적 여지가 오히려 줄어드는 실패를 낳을 수 있다.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최근 한국에서는 공공 미술관이나 기관이 NFT 자산의 통합 운영, NFT 기반 기부 및 전시 프로그램을 직접 관리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된다. 하지만 해외 사례를 보면, 대부분 기술적 실험은 공공이 담당하되 실제 자산의 보유·운영, 콘텐츠 유통은 민간이 중심이 되어 수행한다. 공공이 시장을 직접적으로 주도할 경우, 자율성과 대응 속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현장 예술가들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도 요원해진다. 시장 중심성이 빠진 정책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는 교훈은 이미 여러 미술 산업에서 입증돼 왔다.
교육과 인력양성 부분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체계적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대학이나 기관의 NFT 관련 교육은 기술 습득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현실의 복잡한 거래 구조나 저작권 문제, 글로벌 계약 관행 등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예술가, 개발자, 법률 전문가가 함께 협업할 수 있도록 시장 친화적인 교육 및 융합형 프로젝트 기반 훈련이 요구된다. 특히 스마트 컨트랙트 실습, 실전 사례 중심의 법률 교육, 글로벌 NFT 거래소 연계 교육 등이 병행되어야 미래 예술 생태계에 실질적 역량을 축적할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NFT가 기술적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제도적 현실은 NFT를 어떻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기술은 사회의 기준 위에서 작동한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NFT의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가 아니라, 그 가능성이 실제 시스템 내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현실감이다.
NFT는 여전히 예술 생태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그 잠재력은 거래 투명성, 저작권 명확화, 글로벌 표준 정립이라는 평범한 과제를 얼마나 충실히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K-아트가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이제 정책 희망이 아니라 정책 현실 위에서 작동하는 단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설계가 시급하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AF 에엪 독자소통부 press@artfr.co.kr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이상미의 AI아트'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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